부활 제3주간 금요일

by 붉은 노을 posted Apr 21, 2018 Views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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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학교 시절 연구과 생활(대학원)을 대구 시내 남산동에서 보냈다. 그곳에는 가까운 남문 시장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운영하는 간판도 없는 식당 겸 선술집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할머니 집’이라 불렀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종종 그 집을 들러는데 메뉴는 단 두 가지. 메밀묵 무침과 파전이 전부였다. 선택의 여지없이 두 가지를 주문하면 할머니는 묵무침을 먼저 만들어 내어주고 그때부터 파전 작업에 들어가셨다. 파전을 미리 준비해 두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문과 함께 음식 준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전 만드는 시간이 길고 그 동안에 묵무침을 안주삼아 기다려야 했다. 파전이 나오면 젓가락으로 찢지 말고 끝에서 조금씩 떼어가며 먹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할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스러움을 하소연 하셨다. 우리는 조금씩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음식을 통해 소중함을 배워가야 했다.
  한때 ‘먹음’을 천박함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었다. ‘먹음’의 소중함은 만드는 이의 정성이 담겨있음을 알게 될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음식은 소중하며 만드는 이의 정성을 알아야 한다. 음식이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정성과 마음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 정성과 마음이 뼈가 되고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정성에 정성이 넘쳐 살이 되어 오시는 사랑의 결정체다. 우리는 그분의 살을 먹어야 한다. 사랑의 결정체를 받아 모셔야 한다. 정성이 넘쳐나는, 삶의 고단함을 넘어 오시는 그분 사랑의 신비를 모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