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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2019.09.01 22:04

연중 22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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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의 대상인 교만

   오늘 복음에서도 식사 이야기가 나오지만, 사제는 초대받은 식사 자리에서 늘 가운데에 앉게 되고, 식사가 모두 끝나면 이렇게 함께 식사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항상 듣게 된다. 밥을 얻어먹고도 고맙다는 말을 듣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사제는 대접받고도 감사의 마음을 전해 받는 인물이 되고 만다.

   늘 신자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내 주장을 굽히지 않은 때가 많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는 주로 내 말을 하면서 지내온 게 사실이다. 결국 사제로 산다는 것은 교만한 삶을 살 가능성이 높고 늘 경계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겸손(謙遜)’은 사제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인간적 덕목이라 생각한다.

 

참된 겸손

   진정한 겸손이란 어떤 것일까? 겸손(Humilitas)이란 말은 라틴어 ‘humus’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 , 대지를 말하는 것이다. , 땅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것처럼, 좋은 것, 나쁜 것, 싫은 것 구분 없이 자신에게 찾아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며 모든 만물을 정화하여 성장시키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 겸손의 극치인 예수님의 강생사건이 우리에게 보여주듯, 겸손의 길은 이런 땅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자신을 낮추라고 초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도, 진정한 겸손의 자세가 땅이 온갖 것들을 구분 없이 받아들이고 정화시키는 것처럼, 어떤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전적인 수용과 베품과 나눔의 자세로,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분명히 밝혀주시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예화-맹사성과 겸손

   고려 말, 조선 초에 맹사성이라는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 뛰어난 학문으로 19살에 장원 급제를 하고 20살에는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사람으로 어린 나이에 승승장구를 해 그 자긍심이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파주 군수로 가 있던 어느 날 맹사성이 무명 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 제가 이 고을을 다스리는데 어떤 덕목을 최고로 삼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한 말씀 해 주십시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만 많이 하십시오.” 그 말에 기분 나쁜 듯 웃으며 맹사성이 대답했다.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무명 선사가 알기는 쉬워도 실천이 어려운 법이라며 녹차나 한 잔 하고 갈 것을 권하며 붙잡는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런데 찻잔에 녹차를 따르던 스님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찻물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 결국 넘친 찻물로 방바닥이 금방 흥건해졌다. 화가 난 맹사성이 스님을 노려보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행동이시오? 지금 나를 모욕하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찻잔의 물이 넘쳐서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넘쳐서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그리 모른단 말입니까?”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시벌개진 맹사성은 그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가려다가 그만 문지방에 머리를 찧고 말았다. 그 때 스님이 또 한 마디 조용히 거든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은 없지요.”

 

우리의 시선, 예수님의 시선

   우리는 무엇을 보며 살고 있는가? 무엇을 볼 때 감동하는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무엇을 보는지 보다 어디를 보는지에 따라 감동의 정도는 달라진다. 등산을 해보면 아래에서 산 정상을 바라볼 때보다 산 정상에서 아래를 바라볼 때 더 감동적이다. 즉 사람은 아래를 바라볼 줄 알아야 행복할 수 있다.

   우리의 시선은 늘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게 예수님의 시선이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단지 윗자리에 앉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다. 우리의 시선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즉 우리의 시선은 늘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 나보다 낮은 이들을 향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는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을 바라볼 때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즘 나는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다면 내가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는 게 좋겠다. 우리 눈의 시선이 늘 가난하고 소외 받는 이들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영혼의 시선은 늘 행복한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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