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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2018.08.31 22:48

연중 21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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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오늘 연중 21주일 복음은 지난 4주간 동안 연속으로 들었던 요한복음서 6장의 마지막 부분이다. 요한복음 6장은 빵의 기적으로 시작해서 참된 빵, 즉 생명의 빵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으로 끝난다. 오늘 복음은 바로 제자들의 반응에 대한 내용이다.

   생명의 빵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오늘 복음은 제자들 중 많은 이가 예수님의 말씀이 듣기 거북하다며 투덜거렸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 떠나버린다. 그리고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결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 예수님의 이 질문은 단순한 부추김이 아니라 오히려 사도들에게 당신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반대편에 설 것인지 결정할 것을 촉구하는 말씀이다. 이에 사도 베드로는 수제자답게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요한 6,68)라고 답한다.

 

선택과 결단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사소한 물건을 하나 사는 데도 순간 잘못하면 오랜 시간 마음고생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하고 또 결정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나머지 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생각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오늘 독서와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신앙의 결단이다.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매순간 하느님을 향한 결단이 필요하며, 한 번 결단하고 나서는 거기에 끝까지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독서와 복음의 가르침이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여호수아는 자기가 죽게 될 때를 알게 되자 백성들을 모아놓고 결단을 촉구한다.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면,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 아니면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족의 신들이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여호 24,15).

 죽음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멀리하고 주님만을 선택해야 함을 아주 강력하게 확인하고 또 다짐을 받는다. 오늘 복음도 똑같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원히 살 수 있다고 가르치시자 유다인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요한 6,52)하며 말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하는 결론을 내고 모두 예수님을 떠나간다. 이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물으신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

 비장한 각오로 제자들에게 결단할 것을 요구하신다. 베드로가 즉시 답한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요한 6,68-69). 오직 예수님만을 선택하고 따르겠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신앙은 결단이다. 조금씩 조금씩 자기 자신과 타협하고 하느님 아닌 것과 타협할 때, 결국은 하느님을 떠나게 될 것이다.

 

예화) 최선의 선택과 결단

   어느 회사의 입사시험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출제 되었다고 한다. “당신은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길에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는데 그 곳에는 세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는 할머니, 당신의 생명을 구해 준 적이 있는 의사,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 당신은 단 한 명만을 차에 태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태우겠습니까? 선택하시고 설명을 하십시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어떠한 답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죽어 가는 할머니를 태워 그분의 목숨을 우선 구할 수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의사를 태워 은혜를 갚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사에게 보답하는 것은 나중에도 가능한데 비해 이 기회가 지나고 나면 이상형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이상형을 차에 태우고 가겠다는 솔직한 답변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경쟁자를 제치고 채용된 사람이 써낸 답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의사 선생님께 차 열쇠를 드리죠.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도록. 그리고 난 내 이상형과 함께 버스를 기다릴 겁니다.” 물론 시험 답안지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정말 멋진 선택을 했다.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

   인생을 곧잘 나그네 길로 비유한다. 초록 들판을 걷기고 하지만, 때로는 험난한 산길을 올라야 한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유유자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눈보라를 헤쳐가야 한다. 나그네 길에서 가장 힘든 경우는 아마도 갈림길에 서 있을 때일 것이다. 그것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에서 갈림길을 만났다면, 그 어려움은 더할 것이다. 이정표라도 있다면, 그 이정표를 보고 발걸음을 내딛겠지만, 그마저 없다면 나그네는 한참 고민할 것이다. 한참을 가다 길이 아니면 되돌아오면 되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떠나야 한다면 더욱 고민할 것이다. 게다가 하나는 생명의 길이, 다른 하나는 죽음의 길인 그런 갈림길이 나그네 앞에 놓여 있다면, 한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차라리 모험이며 도전일 것이다. 이 나그네 길에서 필요한 것은 희망이며, 믿음이며, 불굴의 용기입니다. 희망이 없으면 지친 발걸음에 주저앉을 것이며, 믿음이 없다면 나아가길 주저할 것이며, 용기가 없다면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님 이야기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일화이다. 추기경님이 소신학교에 다닐 때 신학교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어머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또 형님이 먼저 신학교에 가셨기 때문에 한사람만 신부되면 되지, 나까지 신부가 되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신학교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고, 지도신부님을 찾아가서 제가 신학교에 온 것은 제가 오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어머니가 가라고 해서 온 거고, 두려운 마음도 들고 해서 저, 신학교 나가야겠습니다.” 하고 말했다고 한다.

   지도 신부님이신부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되기 싫다고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나가!!”하고 고함치시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추기경님이방에서 나가라는 겁니까? 신학교에서 나가라는 겁니까?” 하고 물으니이방에서 나가!”그러더란다. 그런 고비를 하나 넘으면서 계속 신학교에서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인 작은 선택의 순간이었지만, 한국 교회 전체를 생각해 볼 때 정말로 중요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느님 나라 선택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까 하는 사소한 것부터 죽느냐, 사느냐에 이르는 묵직한 선택까지, 그야말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매순간 우리가 내리는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세상과 하느님 나라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다. 그런데 최선의 선택은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인은 그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신앙인들의 선택은 항상 하느님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은 결단을 요구하신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요한 6,67) 베드로가 즉시 답한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이 베드로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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